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해 역사 (문단 편집) == 한국과의 연관성? == 한반도에도 창해역사에 대한 전설이 있다.[* 이 설화가 전승되는 지역은 현재 강원도 [[강릉]] 일대 영동지역으로 옛 [[동예]](濊)의 영역이었다.] 가장 잘 알려진것이 [[조선시대]] 학자 [[홍만종]]이 쓴 [[순오지]]에 의하면 예국의 노파가 시냇가[* 일부 전승에 따라서는 [[강릉남대천]] ]에서 호박만한 알이 떠내려 오는 것을 주워 두었더니, 얼마 안 되어 알이 두 쪽 나며 남자아이가 나왔다. 그 아이 얼굴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며, 6세가 되자 키가 8척이나 되고 얼굴빛이 검어서 성인과 같았으므로 검을 ‘여(黎)’자를 성으로 삼고 이름은 용사(勇士)라 불렀다. 여용사가 예국의 호랑이를 퇴치하기도 하고, 만 근이나 되는 종을 옮기는 등 [[괴력]]을 발휘하자 왕은 상객으로 대우하였다고 한다. 그러나 그가 죽은 곳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. 홍만종은 여러 기록을 예로 들면서 예국이 예전에 [[형주|강릉]]에 있었으며, 진한시대부터 중국과 상통하였고, 오대산에 창해군이라는 옛터가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확실히 믿음직한 말이라고 언급하면서, 창해 역사는 한국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. 또한 강릉에 있던 [[동예|예국]]은 [[실직곡국]], [[파조국]]과 함께 창해삼국이라 불렸다. [[파일:external/img.khan.co.kr/20130924_1044_A65c.jpg]] 창해 역사가 썼다고 전래되는 철퇴도 사진과 기록으로 남아있다. 황성신문 [[1909년]] [[10월 27일]]자 기사는 영국의 허버트 키치너 육군 원수가 한국으로 와서 궁내부 박물관에 들렀다가 창해역사의 철추를 잠시 빌려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. 며칠 뒤인 [[11월 2일]]에는 키치너 원수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실려 있다.[* 당시 극동 순방 중이었으며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열린 [[이토 히로부미]]의 [[국가장]]에 영국 조문 사절로 참석하기도 했다.] 이 철추에 대한 행방은 [[동아일보]] [[1929년]] [[11월 7일]]에 등장한다. 동아일보 기사는 [[1909년]] [[11월 6일]]자 대한민보를 다시 기록하면서 키치너 원수가 철추를 보고 돌려주었는데, 어제는 일본군 사령부가 보겠다고 가져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. 당연히 이 [[철퇴(무기)|철퇴]]가 [[진시황]] [[암살]]에 사용된 철퇴일리는 없다. 일단 시황제에게 날라간 철퇴가 돌고 돌아 [[한반도]]까지 오는게 불가능하고 설사 그게 가능했다 하더라도 이런 엄청난 유물이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사서에 기록된 적이 없었던 걸로 보아선 [[대한제국]] 후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일 것이다. 결정적으로 [[철(원소)|철]]은 매우 산화가 잘되는 금속이다. 2천년간 저 형태를 유지하며 떠돌아 다닐 수가 없다. 다 바스라져서 형태도 알아 보기 힘들게 되었을 것이다. 당장 [[삼국시대]]의 철제 검 유물을 보면 알 수 있다. 오랜세월 땅속에 묻혀 있었음에도 산화가 일어나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. 더군다나 저 시기의 조잡한 철기 제조 수준으로 2천년간 지속된 철제 무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. 그런데 이 유물이 일본군에서 반환하여 다시 [[이왕직]]에서 보관했다가 존재가 잊힌 후, 2021년에 [[국립고궁박물관]]에서 소장한 전통 무기들을 정리한 책 '왕실문화도감 제5권-무구'를 발간할때 '''재발견되었다'''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001&oid=032&aid=0003063718|#]] 철퇴 자체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의장용 철퇴이고, 철퇴의 표면에 은입사 기법으로 장량과 창해 역사의 진시황 암살시도에 대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. 이 글귀 때문에 조선 말기에 이 철퇴가 창해 역사의 철퇴라고 오해받은 것으로 보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